명태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고성군 거진항에 리어카 노조가 있었다고 한다. 거진 출신 마모씨는 “명태가 정말 무지 무지하게 잡히던 때 명태를 실어 나르던 리커카 행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당시 리어카 댓수는 줄잡아 150여대로 추산. 이들이 동업의식으로 연대해서 결성한 일종의 운수노조인 셈이다.
리어카 한 대에 30두름 정도 싣고, 하루에도 수차례 집으로 덕장으로 드나들었다.수시로 경매가 이뤄지니 물량이 넘쳤다.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 다녔다는 전설의 1960년대 명태 호황 시절의 풍경이다.
거진항에는 얼추 500여척의 명태잡이 배가 있었다. 거진뿐만 아니라 묵호 삼척 심지어 울릉도에서 까지 거진항으로 몰려 왔다. 그만큼 말 그대로 명태 개락이었고 명태의 고장 거진 명성은 그때 생겨난 것이다.선술집은 붐볐고 양품점에 금은방도 장사가 잘됐다.다들 벌이가 좋았다. 거진 황금시절이었다.
그 많던 명태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명태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어종으로 지정돼 잡을 수도 없다. 명태의 고장에 살지만 명태를 구경할 수 없는 실정이다. 명태가 자취를 감추면서 거진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인구도 3만여명을 육박하다가 5천명대로 감소했다. 상전벽해로 거진은 쪼그라 들었다.
마씨는 “ 추운날 명태국 한 그릇이면 몸이 풀리고 개운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명태를 볼 수 없을것 같으니 더욱 간절하다. 명태는 식생활을 넘어 영혼이었는데 말입니다. 명태가 사라지는 게 고향의 소멸 신호인지 미처 몰랐다”고 아쉬워 했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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