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세월의 정적을 품은 첩첩산중, 양양 미천골 선림원지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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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만 허락된 좁은 골짜기, 미천골에 들다

강원도 양양의 깊은 산세를 따라 오르는 길, ‘쌀 미(米)’ 자를 품은 미천골은 이름 그대로 특별한 유래를 간직한 곳이다. 과거 이 깊은 골짜기에 자리했던 절에서 쌀을 씻으면 계곡을 따라 하류로 쌀뜨물이 흘러내려 갔다 하여 ‘미천(米川)’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과 산 사이의 폭이 유난히 좁고 가팔라, 올려다보면 좁은 하늘 조각 하나만이 겨우 눈에 들어오는 첩첩산중이다. 그 깊은 골짜기를 울리며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는 어찌나 세차고 우렁찬지, 마치 오랜 세월의 침묵을 깨우는 거대한 북소리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삼층석탑 홀로 지키는 1,500년 전 선림원의 터전

발걸음을 더 깊숙이 옮기면 통일신라 시대 9세기 이전에 창건되어 당시 최고의 선수련(禪修鍊) 도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선림원지(禪林院址)’와 마주하게 된다. 10세기 전후에 대홍수와 산사태로 절이 매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황량한 터전 위에는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유적들이 남아 있다.

진전사지 석탑과 함께 양양 지역의 불교문화를 떠받치는 쌍벽으로서, 발굴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옛 사찰의 웅장했던 규모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 이 발굴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새로운 터가 닦여 온전한 중건과 재창조가 이뤄진다면, 끊겼던 천오백 년의 이야기도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스친다.

외로운 파수꾼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가을의 여운

절터를 오가는 길목, 아직은 채 가시지 않은 푸른 풀들이 파릇파릇 생기를 뽐내고 그 위로 가을 햇살이 가득 내린다. 하늘에는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이 마치 한 송이 연꽃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였던가. 나라와 사찰은 사라지고 없으나 산하는 의지하듯 남아, 첩첩산중 외로운 파수꾼처럼 서 있는 삼층석탑. 홀로 이 긴 세월을 버텨냈을 그 외로움이 고스란히 내 마음의 투사가 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탑에 가까이 다가와 차가운 돌기둥을 어루만지며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텅 빈 정적을 깨우는 세찬 물소리는 마치 1,500년 전 스님들이 정진하던 목탁 소리처럼, 속세에 지친 영혼을 날카롭게 경책하며 마음의 결을 다듬어 준다.

미천골의 애잔한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가을 길.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토종꿀차 카페에 앉았다. 천오백 년 전 선인들이 하늘을 우러러 수행하던 그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쉼을  만들었을까? 유유히 흐르는 미천골 계곡  수정같은  물소리만 귓전을 울린다.(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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