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으며, 그 끝에는 회한이 많기도 하다. 그림으로서 인생의 여정을 회고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뜻 나서기 녹록지 않은 일이며, 생각과 의미는 앞서가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화가 호정 조정승이 자신의 화업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을 마련했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도 그는 현역으로 설악을 그리고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전통 한국화의 정신과 기법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있다. 그의 화필이 아직 멈추지 않은 시점에서 ‘회고’라는 이름을 내걸고 그간의 긴 여정을 정리하는 것은, 어쩌면 잠시의 쉼표와 같은 일이다. 자신의 붓길을 돌아보고 관람객들과 만나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 진도를 떠나 속초에 정착했다. 예향 진도의 정신과 화필의 전통을 체득하고 이어받은 그는 그것을 속초와 설악의 자연, 풍경과 삶을 표현하는 데 그대로 원용했다.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고, 나직하면서도 깊은 사유의 내면을 보여주는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황철봉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후면을 담아낸 대작은 그의 그림 세계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작품이다. 또한 속초 8경 연작과 400년 고찰 보광사의 사계를 40미터에 이르는 대작으로 승화한 작업은 그의 지역에 대한 애정과 활동을 유감없이 드러내준다.
그는 그동안 많은 전시회를 가졌고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작은 화실에 웅크리고 앉아 조용하게, 그러나 쉼 없이 화필을 놀리는 그의 창작 열정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회고라기보다 오히려 정진의 발걸음에 더 가깝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 수묵산수화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정신적 흐름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초기의 향토 풍경에서부터 설악산 연작, 동해의 일출, 속초 8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한 시대의 풍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 고향을 환기한다.
특히 그의 산과 바다, 자연을 다루는 붓질 속에는 고향 진도와 설악산이 묘하게 겹쳐지는 정서적인 다리가 형성되어 있다. 그는 그만큼 향토적이다. 그의 그림은 구수하고 은은한 그의 품성과도 닮았다.
그래서 그의 회고를 그림으로 만나는 것은 그의 인생을 동행하는 일이며, 그와 나누고 교유했던 많은 대화와 자리들을 다시 반추하는 삼삼한 시간이기도 하다. 볼수록 친근하고, 다가가면 어느새 나의 마음의 정원이 되어주는 그의 그림은 그가 변함없이 우리 산수의 맥을 조용하게 이어가는 일관성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렇기에 이번 회고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값지고 의미 있는 회고이며, 한 발 더 정진하기 위한 밑거름으로서의 회고다.그의 작품들은 회고의 갈피를 풍성하게 채우고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붓을 놓지 않는 화가에게 회고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지나온 길을 잠시 돌아본 뒤 다시 산을 그리고 바다를 그리며, 자연과 사람의 마음을 붓끝에 담아내는 일. 그것이 호정 조정승이 걸어온 길이고, 앞으로도 이어갈 길일 것이다.
이번 회고전이 그의 긴 화업을 돌아보는 자리를 넘어,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함께 바라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신창섭)
호정 조정승 회고전 (2026 9. 29 ~ 10. 04 속초문화회관 전시실)
후원 | 강원특별자치도·강원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