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던 이름, 전석진.
1960~7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그는 수많은 작품의 제작자·기획·감독 맡으며 산업과 예술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한창 명성을 누리던 어느 날, 그는 돌연 영화계를 떠났다. 그리고 선택한 곳은 서울도, 문화 중심지도 아닌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 골짜기였다.
전석진 관장은 원래 영화 제작 기획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한국영상자료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 〈추격자〉(1964),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라〉(1964), 〈탈출 17시〉(1966), 〈최후전선 백팔십리〉(1966) 등한국영화사의 굵직한 작품들에 기획·감독·제작자로 참여했다.
특히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 전쟁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전석진이라는 이름을 당대 최고의 기획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단순한 제작 관리자가 아니라, 작품의 시대정신과 완성도를 함께 설계하는 ‘영화적 설계자’였다.그가 관여한 50여편의 영화작품 포스터들이 진부령 미술관 1층에 전시돼 있다.
그런 전석진이 영화계를 홀연히 떠나 진부령에 안착한지도 30여년,그의 도전은 영화에서 미술로 방향을 틀면서 새로운 실험을 선택했다.알프스 스키장으로 알려졌던 진부령, 겨울이면 눈보라가 몰아치고 문화적 기반이라곤 전무하다시피 했던 이곳에서 전석진은 또 다른 인생의 ‘기획’을 시작했다.바로 진부령미술관이다.
황무지에서 문화의 향기를 퍼뜨리다
진부령미술관은 처음부터 주목받는 공간이 아니었다. 접근성도, 인프라도 부족했다. 그러나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전석진 관장은 농익은 통찰과 시선으로 장기적 안목과 콘텐츠 중심 전략으로 미술관을 키워냈고 9순의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매년 알차고 시의성 있는 기획전을 선보이며, 중견·원로 작가와 실험적 작가를 아우르는 전시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진부령미술관은 점차 ‘가보고 싶은 산중 미술관’, ‘작가들이 먼저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해발 500미터 진부령 정상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고성의 관문이자, 관광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방문 코스가 됐다. 자연과 예술의 융합을 성취하면서 지역 문화 지형도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부령미술관은 최근, 전 관장의 그간 노고와 문화적 헌신에 보답하는 의미로 관장 집무실을 ‘전석진 갤러리’로 헌정했다. 이 공간에는 그의 흉상을 비롯해 영화 기획자 시절의 기록과 자료, 예술적 궤적을 보여주는 전시가 함께 마련됐다.
이는 단순한 개인 기념 공간이 아니다.한국영화사와 지역문화사가 만나는 교차점, 그리고 한 예술가가 어떻게 삶의 무대를 바꿔가며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6·7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인물 전석진.그는 영화의 중심에서 물러났지만, 문화의 변방에서 더 깊은 흔적을 남겼다. 황무지 같던 진부령에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을 미술관이라는 숲으로 키워냈다.
전석진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다.문화는 중심이 아니라, 누군가의 결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언이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