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하나에도 수많은 울림이 생긴다고 했다.
김정호의 울산바위가 그렇다.
거대한 바위 하나를 마주한 화가의 시선은 결코 하나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관찰하고, 덜어내고, 다시 구성하면서 울산바위는 매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같은 대상이지만 색과 선, 구도에 따라 전혀 다른 사유의 공간으로 변한다.
이번 울산바위는 특히 수묵화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겨울 울산바위다. 하지만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선명한 블루와는 다르다. 바다와 하늘, 산과 도시가 모두 푸른색과 회색의 중간 지대에 머문다. 색은 한층 절제됐고, 화면은 차분해졌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속초항과 시내의 풍경이 선으로 처리돼 있다는 점이다.
건물과 도로, 항구의 구조물들은 구체적인 도시의 풍경이라기보다 기하학적인 기호처럼 화면에 놓여 있다. 특히 빠르게 고층화되고 있는 속초의 도시 풍경을 이렇게 선과 면의 구조로 단순화함으로써 울산바위의 거대한 자연과 묘한 대비를 만든다.
여기서 김정호 특유의 은유가 작동한다.그는 도시를 직접 비판하거나 자연의 위대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과 도시를 같은 화면 안에 병치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관객 스스로 변화하는 속초의 모습을 읽게 한다.
이것은 김정호가 즐겨 사용하는 은근하고 묵직한 알레고리다.
전체적으로는 단일한 색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첫눈에 그 대비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울산바위와 도시 풍경 사이의 긴장이 선명해진다. 변하지 않는 거대한 자연과 끊임없이 변하고 증식하는 도시. 그 사이에 놓인 속초의 현재가 조용히 드러난다.
그래서 이번 울산바위는 김정호가 추구해온 ‘단순성의 미학’이 한 단계 더 나아간 작품으로 읽힌다.
그에게 단순화는 단순히 대상을 간단하게 그리는 일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자리에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집어넣는 작업이다. 형태를 덜어내면서 생각은 깊어진다. 색을 줄이면서 오히려 풍경의 울림은 커진다.
이번 작품에서 기하학적인 도시의 선과 울산바위의 거대한 덩어리가 만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화적 단순화가 곧 해석의 장치가 된 것이다.그런 점에서 김정호의 울산바위는 점점 더 건축학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철학적인 그림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을 그리면서 도시를 이야기하고, 겨울 풍경을 그리면서 시간과 변화에 대해 묻는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호의 울산바위가 하나의 완성된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색을 바꾸고, 구도를 바꾸고, 선을 덜어내고, 대상을 단순화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울산바위를 만들어낸다.
울산바위라는 하나의 대상이 김정호에게는 끝없는 회화적 실험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단순성’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처음에는 단순하게 보였던 그림에서 어느 순간 해석이 생기고, 그 해석에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그것이 김정호 회화의 강점이자 재미다.
단순성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응축이다.색을 덜어내고, 선을 단순화하고, 형상을 압축할수록 그 안에는 더 많은 생각이 들어간다.그래서 그의 울산바위는 갈수록 사유적이다.그리고 그 사유는 색과 구도, 선과 면이 하나의 응결체로 모이면서 더욱 단단해진다.
마치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짧지만 오래 남는 법구(法句)와도 같다.
그는 지금 울산바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울산바위를 통해 자신만의 회화적 사유를 계속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김정호의 진화다.그리고 그 끝을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울산바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