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로는 음식도시 어림도 없다…’문화도시’ 속초 일회성 돈 잔치 전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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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음식문화도시 속초.’
7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문한 자리에서 속초시는 이렇게 선언했다. 국제크루즈터미널과 연결한 글로컬 전략, 옛 할복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계획, 덕장·식해·젓갈 등 영북 음식문화의 계승… 겉보기에 그럴듯하다. 하지만 정작 속초의 거리에서, 식당에서, 시장에서 우리는 이 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가?

속초는  ‘바다 도시’다. 그런데 해산물 식문화의 다양성은 기대 이하다. 예전엔 겨울마다 명태 도루묵이 넘쳐났고, 도심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속초 고유의 생선요리가 기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명태는 보이지 않고, 도루묵은 관광객용 철지난 이벤트에만 등장한다. 속초에서 흔히 만나는 음식은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유사한 메뉴들뿐이다. 지역 고유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일상에서 사라졌고, 음식문화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획일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음식문화도시’라는 구호만 내세운들 무슨 소용인가. 장관이 오면 갯배 태우고, 간담회 열고, 전략 설명하는 이벤트를 반복한다고 속초의 음식문화가 뿌리 내리는건 아니다.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도 좋지만, 지역민과 식당 주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속초 음식의 자부심’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모든 전략은 책상 위 사업계획서에 불과하다.

특히 ‘크루즈 관광객 유치와 음식도시 연계’라는 구상은 실체가 너무나 빈약하다. 크루즈에서 내린 외국인 관광객이 속초에서 무엇을 ‘속초답게’ 먹을 수 있을까. 그들이 기억할 만한 지역 음식, 되새김질할 만한 맛이 지금 이 도시에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관광객은 단지 볼거리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경험과 감동을 원한다. 그런데 지금 속초는 단지 ‘보여주는 음식도시’를 만들고 있다. 식탁 위에서 체험할 수 없는 문화는 진짜 문화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속초시는 실향민 문화와 음식을 지역의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속초가 지닌 역사적 특수성에서 실향민 음식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지금의 속초에서 실향민 음식을 일상적으로 접하기는 어렵다. 그 요리법과 재료가 단절되었고, 재현하는 데도 한계가 크다. 무엇보다 실향민 음식은 대부분 복고적이며 현재 소비자들의 입맛과 생활 방식에 맞추기엔 대중성 확보가 쉽지 않다. 전시처럼 재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살아 있는 음식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흐름에 1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속초시는 앞으로 3년간 문화도시 예산 198억 원 중 상당 부분을 음식문화도시 조성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결국 예산만 쓰고 실질적 변화는 없는 ‘행사용 이벤트 도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또 하나의 일회성 돈잔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미 팽배하다. 시민의 체감 없는 사업은 공허하다. 외형만 그럴듯한 행사와 공간 조성에 집중하는 지금의 기조는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사업 구상의 패턴이다. ‘그 나물에 그 밥’ 식의 접근, 뻔한 인물들의 익숙한 기획, 새로울 것 없는 형식만 되풀이되는 발표와 행사. 시민은 이미 이 틀에 익숙하고, 이제는 피로하다. 창의력 없는 음식도시 구상은 도시의 미래가 아니라 예산 소진용 ‘전시 행정’에 불과하다. 음식문화를 키운다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이 사업들이, 실제론 소수 기획자의 이벤트 수주와 호주머니 채우기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행정이다. 이 고루함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부어도 도시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

이처럼 홍보 중심의 접근은 매우 안이하다. 현수막 몇 장, 전략 브리핑 몇 차례로 도시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다. 음식문화도시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속초의 식문화가 시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려야 관광객에게도 힘 있게 다가간다. 속초시가 진정으로 음식문화도시를 꿈꾼다면, 무엇보다 ‘속초답게 먹는 법’부터 시민들과 함께 다시 써야 한다.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비전은 허상이다. 음식문화는 그 지역 사람들의 식탁에서, 시장의 좌판에서, 사소한 일상 속에서 자라난다. 정말 속초가 음식도시가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 김형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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