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선 시장은 최근 2026년도 본예산에 반영할 주민참여예산 시민제안사업을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주민이 제안한 사업을 예산에 반영해 예산 편성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재정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속초시의 주민참여예산제는 이름뿐인 참여에 그치고,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속초시의 2024년도 본예산은 약 5,404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해 주민참여예산 시민제안사업으로 반영된 금액은 2억 4,500만 원, 전체 예산의 **0.045%**에 불과하다. 즉, 시민이 예산에 참여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는 형식적인 참여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금액만이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제로 제안된 사업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왜 특정 제안이 채택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투명한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시민위원회가 심의를 한다지만, 그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심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 제안자들은 피드백을 받지 못한 채, 그저 결과만 통보받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 시민 참여란 단지 ‘의견을 내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또한 시민위원회 자체도 행정 중심적이다. 위원회의 대다수가 행정기관 추천으로 선출되며,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시민들이 위원회 활동을 어떻게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위원회는 행정 결정의 외부적 정당성만을 부여하는 기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위원회의 진정한 독립성과 대표성 확보가 필요하다.
주민참여예산제의 또 다른 문제는 사업의 규모와 성격에 있다. 공모되는 사업은 대부분 소규모 생활형 사업에 한정된다. 예를 들어, 벤치 설치나 보행로 정비 등 주변 환경 개선에 관한 제안은 쉽게 수용될 수 있지만, 도시의 중장기 계획이나 핵심적인 재정 투자 결정에는 시민이 참여할 여지가 없다. 결국 시민은 주변 환경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지역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제도적인 한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시장이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예산에 반영한다는 취지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상 시민은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그들의 의견은 행정의 결정에 따라 제한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반영된다. 이는 참여의 본질을 왜곡하는 행태다.
이 시장이 주민참여예산제를 진정으로 시민 참여의 장으로 만들려면,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심의 기준의 명확화와 공개, 위원회의 투명한 운영은 기본이다. 또한 시민 제안이 구체적인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예산 규모를 확대하고, 중장기 사업에 대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는 단순히 제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안이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이 존중되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참여는 권한을 동반해야 진정성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장의 주민참여예산제가 앞으로 진정한 재정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구조적인 보완이 시급하다. 시민의 참여가 단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편집위원 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