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산. 특이한 산이다.모양도 특이하고 내뿜는 정기도 그렇다.백두대간 본류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서있는 모습이 고아같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당당하게 보이기도 한다.속초에서 고성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운봉산이다. 장사동 고개넘을 때도 그렇고, 문암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어디에서도 운봉산이 보이니 운봉산은 중심이고 상징임이 분명하다.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도 저 멀리서 운봉산의 봉우리를 보고 귀항의 방향을 잡는다고 한다.운봉산은 생업과 삶의 푯대다.어느날 차를 몰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운봉산쪽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운봉산을 감상하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운봉산은 보는 각도나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과 영성을 준다고 할까.
내가 운봉산을 보는 방법은 좀 떨어져 봐야 제맛이 풍긴다는 것으로 규정한다.학야리 경로당 앞 코밑에서 운봉산을 보는 우뚝 솟은 멋진 모습도 좋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운봉산은 그 장소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운봉산을 좀 멀리서 보는,몇가지 내가 경험한 코스를 적어본다.
아야진 초등학교에서 국회연수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는 운봉산은 가장 근접거리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특히 석양의 운봉산 자태가 단아하면서도 깊이 있다.
천진 5거리에서 신평거쳐 울산바위로 가는 우회도로에서 운봉산을 보는 맛은 차안에서 보는 색다름이 있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운봉산은 마치 ‘조심해서 운전해’하고 위로하는 듯하다.비교적 긴 거리에서 차를 타고 운봉산을 보는 코스다.
또 한군데 코스는 용촌 오션레이크에서 화암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둔덕에서 보는 운봉산이다. 요즘 이곳에 서면 작년 4월 산불로 민둥산으로 된 모습의 저 뒤편에 운봉산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수 같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툭 트인 야산을 아래면에 깔고 보는 운봉산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간절하게 다가온다.
근자에 발견한 나의 운봉산 감상 코스 한 군데를 더 들면 신평들녁에서 보는 평야속의 산봉우리다. 신평리에서 성대리로 가는 버덩은 지역의 제법 큰 곡창지대다. 벼가 자라면서 녹색 양탄자가 광대하게 펼쳐진 듯 하다. 논길 사이를 차를 몰고 달리다 중간에 세우고 운봉산을 카메라에 담으면 색감이 원색으로 다가오면서 황홀하게 만든다.운봉산을 좀 떨어져 봐야 한다는 나의 지론을 여기도 선명하게 확인한다. 운봉산과 신평 들녁의 동일 색감이 신비하고 아름답다.
운봉산에 감사하다. 내 마음이 지치고 외로울 때,석양 노을이 웬지 허전함을 마구 쏟아 부을 때 운봉산은 등을 두드려주는 듯 하다.
아침 천진에서 집을 나설 때 운봉산이 보고 싶어 철길을 따라 용암리 방향으로 운전대를 튼다. 그런 날 운봉산은 나에게 하루 일진을 말해주는 듯 신령하게 다가온다.
운봉산은 그렇게 거기 있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