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서 시작해 보훈시설 지정까지… 애국지사 추모·선양 한길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마을은 고성에서 항일독립운동가 추모 작업을 선도적으로 이끈 곳이다.그 중심에는 황기중 구국숭모공원위원장의 20년 가까운 집념과 노력이 있다.
황 위원장이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것은 2006년 무렵이다. 지역에 묻혀 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후손들이 선열들의 뜻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출발이었다.
당시만 해도 쉽지 않았다. 황 위원장은 자료를 찾고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운봉리 출신과 고성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하나씩 확인했다. 주민과 출향인, 기관·단체를 설득해 추진위원회를 꾸렸고, 모금운동에도 직접 나섰다.
그 결과 2006년 10월부터 2007년 6월까지 8개월 동안 4,300만원을 모았다. 헌성금과 부지 제공,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해져 2007년 6월 숭모비 제막식과 제1회 숭모제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국가보훈시설물로 지정되는 결실도 맺었다.다섯분의 항일 독립운동가를 모실수 있었다.
2009년에는 비와 정자각, 식수대 등을 갖춘 숭모공원 조성사업이 완료됐다.
그러나 황 위원장의 활동은 시설을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의 역사도 사라진다’는 생각으로 매년 숭모제를 이어왔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독립운동의 의미를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숭모제에는 각 학교에서 선발된 초등학생 600여 명을 초청해 나라사랑 그림그리기와 글짓기 등 문예백일장을 열었다. 10년 동안 약 2,000만원의 도서상품권 등을 마련해 학생들을 시상했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이 어려운 경우에는 교내에서 작품을 제작해 제출하도록 하고, 교사들이 심사해 행사장에서 시상하는 방식으로 참여의 폭도 넓혔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숭모문화 별빛축제를 비롯해 다양한 추모·문화행사를 통해 독립운동의 정신을 지역사회에 되살리고 있다.
“실형 살고, 유치장에 갇혀서도 독립을 꿈꿨던 사람들”
황 위원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삶이다.
운봉 출신 대한독립애국단 이근옥 지사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고, 아야진 출신 김형석 지사 역시 실형을 살았다. 문명섭·김연수·이석규 지사는 1년 가까운 서대문 형무소 유치장 생활이라는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이들은 단순히 ‘무죄’로 풀려난 것이 아니라 당시 기록상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된 경우였다.
석방 이후에도 일제의 감시는 계속됐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다시 끌려갈까 두려워 장독대의 큰 독을 엎어놓고 그 안에 몸을 숨기는 등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건봉사를 밤중에 찾아가기도 했다. 나라를 되찾는 일에 쓰겠다며 자금을 요구했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야밤에 움직이는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총독을 몰아내자’는 취지의 격문을 성대리와 미시령, 고성 광산리 등 고성 전역에 붙이고, 교암리 장날에는 “군수를 몰아내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제에 맞섰던 것이다.
황 위원장은 “당시 독립운동가 가운데 징역 4년 이상의 중형을 받은 분은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결국 황기중 위원장이 지난 20년 동안 해온 일은 단순히 비석 하나를 세우고 공원을 조성한 일이 아니다.
자료를 찾아 이름을 되살리고, 후손과 주민을 모으고, 국가보훈시설 지정을 이끌어내고,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기억을 이어온 일이다.
작은 마을 운봉리가 항일독립운동의 추모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한 사람의 오랜 집념이 있었다.
황 위원장의 바람은 분명하다. 숭모공원이 단순한 추모시설에 머무르지 않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정신을 배우고 되새기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남는 것이다.
설악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