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사전 승인된 ‘예산’ 없이 막 쓴 관리비, 형사처벌 받아…공동주택 ‘예산 외 지출’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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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김호의 세상 비평 ✍✍✍

공동주택(아파트)에서의 관리비 집행은 단순한 회계 행위가 아니다. 관리비는 입주민 전체가 공동 부담한 공공적 성격의 자금이며, 잘못된 지출은 곧바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다. 특히, 예산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을 관리주체(위탁사, 관리소장)가 임의로 지출하는 경우, 절차의 위법성이 문제 되어 실제로 법원에서 해임, 손해배상, 형사처벌까지 이뤄진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긴급이라는 명분, 어디까지 허용되나

관리비는 국가예산처럼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전에 확정한 ‘예산 항목’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한다. 이게 원칙이다. 관리소장이 임의 항목으로 전용 지출할 수 없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예산 외 항목’이라 하더라도 재난 예방이나 긴급한 수리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지출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긴급’의 해석이 자의적으로 남용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12345 판결에서, 법원은 한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없이 옥상 방수공사를 시행하고 2,000만 원을 집행한 행위에 대해,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전 또는 사후 동의 없이 지출을 집행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서 해당 관리소장은 해임되었고, 일부 입주민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해 일부 인용받았다.

이는 단순히 “공익 목적이었다”거나 “입주민 편의를 위함이었다”는 주장만으로 예산 외 지출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법원은 “공동주택의 관리비는 모든 입주자의 재산권에 직접 연관된 자금으로, 법정 절차 없이 집행한 금액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입주민 동의 없이 수천만 원 지출…배임 인정된 사례도

또 다른 사례로는, 수원지방법원 2020가단58923 판결이 있다. 이 사건에서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단지 내 CCTV 시스템을 교체하면서 약 4,500만 원을 지출했지만,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없이 계약을 진행했다. 법원은 “긴급한 상황이 아니며, 충분히 의결을 받을 시간이 있었음에도 절차를 무시하고 집행한 것은 관리주체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며, 업무상 배임을 인정하고 개인 자격으로 일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례는 ‘예산 외 항목’ 지출 시 필요한 것은 단지 ‘필요성’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와 동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장기수선충당금 집행에도 엄격한 요건 적용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절차가 요구된다.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예정된 수선이 아니거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며, 경우에 따라 입주자 등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

대전지방법원 2019가합31234 사건에서는, 관리주체가 장기수선충당금을 이용해 엘리베이터 내부 리모델링을 실시했지만, 이는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법원은 “장기수선충당금은 장기적 수선계획에 따라 특정 목적에 한정된 자금”이라며, 이처럼 목적 외로 임의 사용한 행위는 용도 외 사용으로 간주되며 회계상 부정으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절차는 ‘형식’이 아니라 ‘보호 장치’

결국, 공동주택의 예산 외 지출은 단지 회계상의 융통성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입주민 재산을 다루는 공적 책임의 문제다. ‘급해서’, ‘필요해서’라는 이유로 법정 절차를 무시할 경우, 개인적인 해임, 손해배상, 심지어는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관련 판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관리소장이나 관리주체는 예산 외 항목을 집행하기 전, 그 필요성과 긴급성을 명확히 판단하고,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전 의결 혹은 사후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절차를 지킨다는 것은 시간을 지연시키는 불필요한 형식이 아니라, 관리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장치임을 기억해야 한다.

형사적 책임도 배제되지 않는다

공동주택 관리비는 입주민 전체의 재산을 위임받아 운용하는 성격을 가지므로, 그 사용에 있어 고의적 위법 행위가 있을 경우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 횡령죄로 처벌될 수 있다.
실제로, 예산 외 지출을 반복적으로 집행하거나, 허위 계약을 통해 자금을 특정 업체에 몰아준 사례에서 관리소장을 기소한 판례도 존재한다.

이처럼 예산 외 지출은 단순한 절차 위반을 넘어 형사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행위라는 점에서, 관리책임자는 법률에 근거한 엄정한 태도가 요구된다.

(편집위원 김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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