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으로 두지 말고
무르익도록
고루 삶으며 살아야
삶이라 했나
– 압력솥을 닫으며 / 김미외
Don’t live it raw.
Let it stew—
softly, evenly,
until it yields, tender.
That, perhaps,
is what it means to live.
ㅡ As I Close the Pressure Cooker
By Kim Mi-oe
♤ 평설
‘삶’이라는 낱말은 ‘살다’의 어간 ‘살’에 접미사 ‘ㅁ’이 결합한 말이다. ‘사람’도 이 어간에 중세 접미사 ‘-암(모음은 아래아)’이 결합하여 파생된 말이다. 살아가는 생명체가 사람이고, 그 과정 즉 인생이 삶이다.
사람은 국어사전에서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로 풀이를 추가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라 했을 때 인간의 됨됨이나 성질이 단순히 동물적 조건만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삶은 사람 노릇이기도 하다. 이 노릇에 따라 한국어는 사람과 삶의 표현이 달라진다. 정서·관계·존대에 따른 인간 호칭과 감정이 매우 발달한 언어가 한국어인데, ‘이,분,양반,어른,놈,애, 자…’등이 그 예다.
우리 고유어에 중국과 일본 한자 단어까지 다 수용하면 유의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별종도 많다? 모를 일이다. 하여튼 실용성이나 역할, 철학적의 개념 중심으로 분화된 서양어와 다른 면이기도 하다.
삶은 종교적 의미로 살피면 조금씩 다르다. 유교는 관계·윤리로, 불교는 인연·해탈로, 기독교는
피조물·구원의 관점으로 본다. 말하자면 각각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한다. 그렇지만 세 종교 모두 ‘생명(삶)과 사랑’이 공통점 또는 필요조건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삶과 사랑’의 중세 표기에서 삶의 모음은 ‘ㅏ’이고 사랑의 ‘사’는 ‘ㆍ(아래아)를 쓴다. 글자풀이 놀이식으로 보면, 제자 원리가 ㅏ는 사람에 하늘이 결합한 ‘ㅣ(人)+ㆍ(天)’ 글자이고, 사랑은 ㆍ(天) 자체이다. 사람이 지녀야 할 천성이 사랑이라는 셈이다. 그게 사람 노릇이다.
삶은 life이다. 생명체로서의 유기적 존재이자 신으로부터 받은 영적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live’ 등으로의 확장된 것은 근세 들어 활력, 행동 등의 에너지적 존재로 인식하면서다.
김미외 시인은 이 시에서 중의법을 활용하여 ‘삶’이라는 단어를 다의적으로 접근한다. 음식을 익히는 행위인 ‘삶(煮 익힐 저)’을 인생인 ‘삶(生. Iive)’에 연결하는 언어유희(pun)를 통해, 에너지와 수양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무생물인 압력밥솥이 활력과 열정, 숙성의 은유를 증기로 내뿜으며 오히려 지금 시인을 각성시키고 있는 셈이다.
※ 김미외: 『예술세계』등단, 한국문인협회, 청송시인회(청시). 시집 『둥근 세상의 춤을 추겠습니다』, 『기억나무에 남아 있는 시간들』 ,『달은 왜 물고기의 눈이 되었을까』외 다수.
* 평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