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오려나
샛ᄇᆞᄅᆞᆷ이* 분다
추분을 하루 앞두고
갈참나무 끝에서
법쟁이* 하늘을 흔들고 있다.
ㅡ 동풍 / 윤봉택
* ᄇᆞᄅᆞᆷ: 바람의 제주어
* 법쟁악: 서귀포시 하원동 산 ‘법정이’ 오름 명칭
Will it pour,
in rods and sheets?
Sat-ba-ram is blowing.
On the day before the autumn equinox,
at the tip of a sawtooth oak,
Beop-jaeng-i stirs the sky.
ㅡ East Wind
by Yoon Bong-taek
<Footnotes>
* Sat-ba-ram: the Jeju dialect word for the east wind. In traditional Korean, Satbaram refers to a wind blowing from the east, often seen as a seasonal or transitional sign.
* Beop-jaeng-i: the name of a volcanic cone (oreum) located in Hawon-dong, Seogwipo-si, Jeju Island.
♤조각 평설
이 시를 대하고 먼저 드는 의문은 ‘어?샛바람(동풍)은 봄바람 아닌가?’였다.
알고 보니 바람의 고장인 제주에서는 이 낱말이 단순히 방위와 계절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동서남북 대한의 바다와 태평양의 습기를 머금고 한라산의 거대한 정수리를 넘으려는 대기의 팽팽한 긴장이 담겨 있었다. 평자는 제주에 갈 때마다 신이 배달겨레에게 준 구들목 또는 창덕궁 비원 같은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섬은 거대한 기상 관측소 같기도 하다. 뭍사람들이 쉬이 느끼지 못하는 기압의 미세한 파동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 천지의 기미를 섬 주민들은 또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시인은 추분(秋分)이라는 우주적 균형의 날을 하루 앞두고, 이 섬세한 대기의 흐름을 포착한다. 태양의 황경이 낮과 밤의 길이를 팽팽하게 맞서게 하는 추분의 임계점, 이때 불어오는 샛바람은 여름의 열기를 밀어내고, 서늘하고 청명한 기단을 끌고 오는 가을의 전령인 셈이다. 그러므로 갈참나무 가지 끝의 떨림은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었다. 계절의 순환과 한반도 남단 제주의 지형이 빚어낸 바람의 길을 기록하는 필사(筆寫)였다.
그러니 “장대비가 오려나”라는 첫 구절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제주 토박이 경험에서 다져진 본능적 촉수이다. 바다에서 밀려온 고기압 가장자리의 습한 공기가 오름에 부딪혀 지형성 상승(Orographic lifting)을 할 때 구름이 응결되고 비가 내린다는 과학적 지식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배우지 않아도 잘 안다.
갈참나무는 상수리·굴참·갈참·졸참·신갈·떡갈 참나무 6종 중에서 가을 단풍을 끝까지 보여주기에 갈(가을)참나무이니 과히 추분의 시작 또한 알릴 만하다. 이 나무 끝에서 ‘하늘을 흔드는’ 법쟁이 오름의 모습은 이 시의 상승 이미지를 완성한다. 물리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했듯이 바람은 지형의 꼭대기를 스칠 때 속도가 빨라지며 휘몰아치는데 법쟁이 오름 정상을 향하는 갈참나무는 그 거센 기류를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풍향계와 같다. 시인은 역으로 “갈참나무가 오름 하늘”을 흔들거나 “오름이 하늘”을 흔들고 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주객전도의 메타포로 대지 에너지가 하늘로 뻗어가는 역동성을 그려낸다.
윤봉택 시인은 과학적이고도 장엄한 자연의 섭리를, 제주 한라산만의 계절 감각을 정서적인 직관으로 고요하고도 웅장하게 담아내었다. 서귀포 출신인 변시지 화백의 일련의 제주 그림이 떠올랐다. 한편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을 그린 고흐는 전생에 제주에서 살았지 않았을까?
※ 윤봉택: 시인, 서귀포시 출생,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월간문예사조》 신인상 시 당선. 시집《농부에게도 그리움이 있다》 외. 제9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대통령상). 제15회 서귀포문학상. 국제펜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장.
ㅡ 평설: 이하(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