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다
향기로운 어둠으로
하늘을 뒤덮었다
타오르는
붉은 화음
– 노을 / 운경 김행숙
Mysterious
With fragrant darkness
Covers sky
Burning
Crimson harmony
– Sunset by GIMHAENGSUK
♧ 황혼과 노을은 다르다. 황혼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또는 그즈음의 어스름한 빛 정도이지 붉게 타는 서녘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어의 dusk도 어두워짐을 뜻하고 twilight는 Twi+light이니 하늘에 빛이 두 개인 시간대, 그러니까 ‘트와일라이트‘는 황혼이나 여명의 짧은 순간에 달과 해가 동시에 보이는 때를 이른다. 프랑스 말에 ’개와 늑대의 시간‘(entre chien et loup앙트루 샤 에 루)이라는 표현은 이 시간에 저 멀리서 달려오는 동물이 자신이 키우는 개인지, 자신을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하여 이렇게 불렸다. 황혼은 저무는 시간성을 지닌다.
노을은 이 무렵에 빛의 산란으로 하늘이 붉게 보이는 기상 현상이다. 사실 노을은 비단 황혼 시간대뿐만 아니라 해가 뜰 무렵의 붉은 하늘도 노을이다.
사과가 붉은 이유는 사과가 버린 빛이 붉기 때문이다. 다른 빛은 사과가 흡수했다. 버린 빛은 우리 눈이 줍는다. 노을의 붉은 빛은 여기에다 내게로 오는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아서 나의 품에 도달했다. 버림과 질김은 언젠가 인연으로 닿는다. 자연과학과 문학이 무관할 것 같지만 문학은 과학적 사실을 활용하고 철학적으로 재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노을의 과학적 사실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다룬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공기 중의 산소, 질소, 먼지 같은 입자들과 부딪힐 때 이 빛은 사방으로 퍼진다. 이를 산란이라고 하는데, 대기 중 입자 크기보다 빛의 파장이 크고 길 때 발생하면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 작거나 같을 때 발생하면 미 산란(Mie scattering)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대기에 수증기가 많아져 이를 끈질기게 돌파한, 파장이 긴 붉은빛(레일리 산란)이 우리 눈에 도달하면 노을이라는 현상으로 온다.
김행숙의 조각시 ‘노을’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응축되어 있으나 과학을 알면 더 복합적이고, 자연 현상이 주는 다층적인 의미로 탐색할 수 있다. 시의 다의성은 풍부할수록 좋다. 다만 지나친 난해함으로 시인 자신도 횡설수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다. 시의 의미는 과학적 논증의 논리로도 접근할 수 있는 형이상학이다.
이 시는 ‘기묘하다’라는 형용사로 시작한다. 이상야릇하게도 감탄사로 느껴질 정도로 가슴에 진동이 온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향기로운 어둠’과 ‘붉은 화음’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노을을 단순히 시각적인 현상이 아닌, 감각의 총체로 확장시킨다.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석양’ 그림을 만났을 때의 감흥이다.
해가 지는 순간, 세상은 점차 어둠 속으로 잠기지만, 그 어둠은 ‘향기로운’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일몰이 단순히 빛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임을 암시한다.
‘하늘을 뒤덮었다’로 한정된 시공에 머무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장대한 사건임을 강조한다. ‘타오르는 붉은 화음’은 노을의 강렬한 색채를 청각적 이미지인 ‘화음(和音)’으로 변환한다. 감각의 전이를 통해 노을이 단순히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아닌 격정과 조화, 충만과 무상함, 회고와 성찰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시간임을 드러낸다.
‘화음’은 음악적 메타포로서 서로 다른 음들이 만난 조화이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허무, 기억과 소멸 같은 감정들도 어우러지게 하는 ‘노을의 시간’임을 상징한다. 이는 곧, 노을이라는 자연 현상이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질문의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시인은 노을을 통한 인간 존재의 성찰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변화를 넘어서, 어쩌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에게 노을은 지나온 세월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상징할 수 있겠으나 인생의 끝자락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삶의 열정이 남아있는 역동적인 순간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노을은 단지 끝물의 현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촉발하는 매개체이다.
그러고 보니 ‘기묘하다’라고 앞세운 이유가 드러난다. 노을이 일상적인 자연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주는 특별한 의미와 철학적 충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로써 노을은 아름다움과 불안, 끝과 시작, 소멸과 생성의 ‘경계’로 작용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짚는 상관물이다. 그러기에 노을이 질 때면 우리는 내면과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거울을 대하듯 시선을 고정할 때가 많은가 보다. 언젠가는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귀천/천상병의 시 일부분)’ 돌아가 보자.
※ 운경 김행숙: 1995년 시문학 등단, 시집 <우리들의 봄날> 외 7권, 수필집 <바다로 가는 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한국기독교문학상, 이화문학상, 아름다운 문학상, 김기림문학대상 수상
♧ 해설 에세이-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계간 상징학연구소에서 따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