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바삐 간다고,
활짝 눈 뜨나요?
부처님 눈도 늘
반개(半開)이던데요
– 선암사 매화 / 이하
Why are your eyes wide open,
as if rushing somewhere?
Even Buddha’s eyes
were always half-closed.
ㅡ Seonamsa’s Plum Blossoms / Yi Ha
올해는 봄눈이 잦다. 그러다 보니 일찍 핀 매화는 모두 설중매가 되었다. 설중매는 특정 매화 품종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눈을 뒤집어쓴 매실나무의 꽃은 모두 설중매다. 필자의 자택인 설와재에는 홍매 다섯 그루와 백매 세 그루가 있는데 홍매가 더러 눈을 맞이한다. 흰 눈 속에 붉은 꽃이라니! 안쓰럽다고 하기보다 그지없이 아름답게만 여기니 몹쓸 성정이다.
설중매 용어가 일반화된 계기는 1984년 문화방송 조선왕조오백년 월화드라마 ‘설중매’ 때문이다. 필자는 드라마에 둔감하지만 극중 설중매인 인수대비 역의 고두심 배우와 칠삭둥이 한명회의 고 정진 배우의 열연은 연일 화제였다. 시청률을 조사하지 않은 시대이니 아마도 KBS 드라마 ‘첫사랑’(65.8%)보다도 높았을 것이다. 설중매가 일찍 문학 작품에 등장하기는 고려 말 대학자인 이색, 권근의 한시에서 보이나 앞서 언급했듯이 눈 속의 매화를 일렀을 뿐이다.
매화는 잘 아시다시피 선비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다. 사군자로 분류하듯이 강인함·고결함·절개·조화·희망 등의 상징으로 본다. 그래서 많은 문인들이 매화를 통해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인간이 본받아야 할 정신적 가치를 노래했다. 대표적으로 퇴계 이황은 매화를 매우 사랑했으며, 잘 알려진 매화 시만 해도 107수가 있다. 운명하기 직전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라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도산서원이나 퇴계 유적지에고매가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안동시도 둔감했다. 퇴계 종택 연결 도로나 유휴지에 일찍이 조성할 만했는데 그리하지 않았다.
매화라 하면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즉 매화는 평생 추위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신흠의 시 구절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문집인 상촌집 野言(야언)에 나온다고 대개 설명하고 있으나 실상을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매화 조각시를 지은 때는 십 년 전이었고 새삼 다시 상기한 것은 지난주였다. 삼월 중순이면 광양 등 남쪽 지방은 매화가 장관이다. 이번에도 ‘호남 5매’를 만나 보리라 작심하고 오랜만에 탐매 여행을 떠났다. 의당 설레었다.
오매는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사의 선암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전남대의 대명매(大明梅),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그리고 고사한 소록도 수양매를 일컫는다. 수양매 대신 나름 화엄사 흑매를 넣고는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결과는 또 헛걸음이다. 매실 농원의 매화와 고혹적인 통도사 홍매는 절정이나 정작 유명한 오매는 꽃봉오리만 맺어 탐매객들의 애를 태운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가 넘쳐나는데 혹여나 했던 나의 탓이다. 물론 아직 교단에 매인 몸이라 시기를 고를 수 없기는 했다.
화엄사 흑매는 사진으로 특히 사랑받는다. 원래 선암매,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와 더불어 화엄사는 흑매가 아니라 부속 암자인 구층암 뒤 야생 백매로 자란 화엄매가 우리나라 4대 매화라 꼽지만 어찌저찌 흑매가 더 유명해졌다. 흑매는 나무 표피가 좀더 검고 용트림하듯 휘감은 가지에 검붉게 피는 꽃이 매우 인상 깊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사찰 건물인 국보 국각황전과 고색창연한 대웅전 사이에 있으니 더 장관이다. 사진은 주된 대상도 중요하지만 배경이 한몫한다. 올해도 흑매 사진 콘테스트가 열리고 있었다.
나야 실력이 못 미치니 아예 응모조차 하지 않으나 괜히 질투가 나서 흠잡아 한소리해 본다. ‘무슨 사진이 이래? 채도 보정을 이리 과도하게 하면 너무 원색적이어서 고고한 흑화(黑梅)가 아니라 요염한 혹매(惑梅)잖아!’
이런 흑매의 만개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선암매도 고불매도 눈을 뜰까 말까 한 꽃봉오리만 보고 석양에 돌아서야 했다. 그러니 아쉬움에 몇 번이고 매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다가 문득 부처님 면목(원래 용모의 불교어)이 떠올랐다. 고고한 수행으로 이룬 모습에서 얼굴은 넓고 원만하기가 보름달 같다. 볼과 이마가 깨끗하고 맑으며 입술은 붉고 윤택하여 석류빛과 같으며 은은한 향이 난다. 고매한 눈은 맑고 깨끗하고 지긋하다. 매화를 이리 묘사해도 비슷하리라.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했는지 무엇보다 매화의 반쯤 핀 모습이 부처님 반쯤 내리감은 눈처럼 여겨졌다.
석가모니 불상은 반쯤 뜬 눈(半眼, 반안)으로 조각한다. 참선 수행법이 그러하기도 하지만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눈을 크게 뜨면 속세 지향적이고, 다 감으면 열반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반쯤 뜬 눈은 속세와 초월적 경지를 동시에 아우르는 균형을 상징한다. 항상 깊은 명상(禪定, 선정)에 들어 있는 상태로 묘사하면서도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중생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지극한 자비와 평온함을 느낀다.
반만 핀 반개(半開)의 매화는 오히려 만개한 화려함보다 적절한 기대와 희망, 평정(平靜)을 준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너무 지체하는 듯하여 돌아서니, 한번 보고 끊는 인연이 아니라 실망하지 말고 또 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아직 쌀쌀한 봄바람인데 분명 몇 가닥 온기와 향기가 섞여 있음을 느낀다. 이제 눈 감고도 너를 볼 수 있다.
※ 이하: 본명 이만식. 문학박사. 월간문학(시조)과 오늘의문학(시) 등단, 짧은 시형 조각시 창시, 문체부 우수도서 <지식인의 글쓰기>, 시집 <하늘도 그늘이 필요해> 외 저서 17권, 여러 신문 칼럼 활동, 세종문화예술대상(문학) 수상. 현 경동대학교 부총장.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졸리는 반개안과 희망의 반개인의 의미를 대칭시켜 보는 재미를 주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