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장사동 버스정류장 한켠에 ‘콤팩트시티’ 홍보판이 걸려 있다. 걸어서 9분 안에 문화시설과 병원, 슈퍼마켓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9분 생활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낙후된 장사동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일상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홍보판이 내걸린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장사동의 현실은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점이다.
현재 장사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식당과 일부 상점뿐이다. 걸어서 9분 안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문화·생활편의시설이 촘촘하게 들어선 ‘콤팩트시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지금 장사동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사 새마을’ 도시재생사업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90억7300만원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7월 말까지 노후주택 48개소의 집수리와 스마트 가로등 설치가 완료됐고, 앞으로 영랑어울림센터와 장사시니어플러스센터 등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공간이 단계적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런 시설 몇 곳을 조성한다고 해서 곧바로 콤팩트시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생활권 자체를 어떻게 재편하고, 어떤 시설을 어디에 배치하며, 장사동만의 생활·문화·경제 기능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도시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속초시가 말하는 ‘장사동 콤팩트시티’에는 정작 장사동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독자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실행 없고 홍보만 요란한 와중에 업자만 돈 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영랑호 주변에 새로운 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장사동 콤팩트시티와 연결해 설명하는 것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콤팩트시티는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완성되는 사업이 아니다. 주민들이 실제로 걸어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구조와 생활서비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에게 도시정책의 성과를 과장해 보여주는 홍보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장사동의 도시재생과 생활환경 개선보다 초고층 개발 논리가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용촌부대 고도제한 해제와 이에 따른 장사동 일대 초고층 개발 가능성을 둘러싸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시의원이 도시재생사업의 취지와 방향까지 희생해서라도 초고층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자들 편드는 발언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초고층 생활형숙박시설이 들어선다고 장사동이 천지개벽하는가.
장사동에는 아직 대형마트조차 없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의료·문화·쇼핑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기본적인 생활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초고층 건물부터 세운다고 해서 9분 생활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영랑동 일대에도 유사한 초고층 개발이 이미 들어서 있다. 고층 건물 하나 더 세운다고 장사동의 도시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주변 지역과 비슷한 형태의 생활형숙박시설이 난립할 경우 도시경관과 주거환경에 부담을 주고, 지역 상권에는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결국 핵심은 누가 이익을 가져가느냐다.
초고층 개발이 현실화되면 가장 먼저 땅값 상승과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쪽은 토지소유자와 시행·개발사업자다. 반면 기존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생활환경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지역상권에 어떤 지속적인 효과가 생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개발사업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만으로 시민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개발이익은 민간이 가져가고 주민에게는 교통량 증가, 경관 훼손, 기반시설 부담만 남는다면 그것을 과연 시민을 위한 도시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속초시의 도시정책이 이런식이다.
장사동에 필요한 것은 초고층 건물 몇 동이 아니라 주민들이 걸어서 생활할 수 있는 생활권이다. 낡은 집을 고치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에서 끝나는 도시재생도 부족하다. 병원, 마트, 문화공간, 작은 도서관, 주민공동체 공간, 생활체육시설 등 실제 주민들의 하루를 바꾸는 시설과 상권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
콤팩트시티라는 이름 아래 영랑호 주변 개발을 끌어들이고,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초고층 개발의 명분을 만들어서는 이중플레이는 시민 기만이다.
결국 도시정책의 방향이 언제든 개발사업자와 토지소유자의 이익을 중심으로 바뀐다면, 이름만 ‘콤팩트시티’일 뿐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개발 부담일 수 있다.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행태의 도시정책속에 골병드는 건 시민들이다.
설악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