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꼴 베며 주경야독, 뼈 속까지 농협인 토성농협 최선철의 35년 농협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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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소 꼴을 베고, 밤이면 책을 들었다.최선철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말처럼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길을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조실부모하고 맨주먹 최선철 인생의 출발점이다.

운동을 좋아했던 고성군 운봉산 아래  야촌리 소년 최선철은 한때 야구와 배구로 땀을 흘리며 설악중학교 진학을 했으나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운동을 내려놓고 동광중학교로 전학했고, 이어 동광농업고등학교에서 축산인의 길을 결심한다.

고등학생이던 그는 소 7마리를 키웠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축사로 향했고,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았다. 1980년대 소값 파동은 어린 나이의 그에게 쓰디쓴 현실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좌절이 아니라 현실을 읽는 눈이 됐다.

농협대 진학을 향한 길도 평탄하지 않았다. 낮에는 고물상을 다니며 돈을 벌고, 저녁이면  노량진학원에 다녔다. 그렇게 그는 끝내 합격했고, 학업을 마치고 1991년 “금의환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귀향했다.첫 근무지는 금강농협이었다.

이후 거진농협, 토성농협까지. 고성군 관내 농협을 두루 거치며 그는 여신, 자재, 주유소, 하나로마트 등 농협 업무 전 분야를 섭렵했다. 점장, 과장, 소장으로 차근차근 승진하며 그의 업무 반경은 넓어졌고, 시야는 깊어졌다. 현장에서 단련된 그의 ‘농협 근육’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9년부터 토성농협  기획상무를  맡으면서 그는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숫자와 현장을 동시에 읽는 감각은 이때 완성됐다. 2019년 고성 산불 당시에는 중앙회 무이자 자금을 이재민들에게 신속히 연계·분배하며, 농협이 지역 위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토성농협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그는 새로운 제도 속에서 상임이사로 취임하며 토성농협 경영 전반을 총괄하게 된다. 조직 안정화, 사업 성과, 내부 신뢰 회복까지 눈에 띄는 성과들이 뒤따랐다.내실있는 분명한 결과였다.지금 신사옥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스스로를 “뼈 속까지 농협인”이라 말한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제 ‘농업인 중심의 농협’을 넘어 주민과 함께하는 공동체 중심 농협으로 향하고 있다. 농업인과 주민, 조합원과 지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토성농협. 그는 질적 전환의 설계도를 들고 제 2의 출발선상에서  신발끈을 다시 조여매고 있다.

조용하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살핀다.그러나 배려심 깊고 소탈하다.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일은 묵묵히 처리한다. 지역과의 소통도 위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이뤄진다. 이른바 수평적 리더십. 그의 역할에 칭찬이 자자한 이유다.

농협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조합 안팎의 도전은 거세지고, 사회적 기대는 높아진다.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선철은 지금, 토성농협을 명실상부 주민과 함께하는 지역 중심센터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소 꼴을 베며 다져온 그의 인생 도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난했던 농부의 아들 최선철의 농협 인생, 그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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