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개산 400주년 특집) “보광사 새벽기도가 큰 힘이 되었죠”…실향민 남편과 무작정 속초행 62년 고무순씨의 인생반전

0
1024

“대관령을 버스 타고 넘어 오는데 얼마나 덜컹거리든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남편과 속초에 도착했지요” 서울이 고향인 고무순씨(86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속초 땅을 그렇게 밟았고 62년 세월이 흘렀다.친구 한명 없는 타지에다가 북에서 피난 온 실향민 남편 역시 혈혈단신이었다.

화폐개혁(1962년)으로 수중의 돈을 교환하니 딱 3만원이었다. “그 돈으로 재봉틀을 한대 사서 일을 시작했습니다.바다가 번성한 때라 천막장사가 잘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속초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고난이 닥쳤다.남편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때 큰애가 대학 4학년. “직원 2명을 두고 천막업을 이어 갔지만 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등록금 걱정에 울고 하숙비 걱정에 용돈 걱정에 울었죠.참 힘든 나날이었습니다”고 그는 말한다.

그때 마다 영랑호 보광사에 갔다.보광사는 속초에 내려 오면서 부터 인연을 맺어 주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낮에는 일이 바빠 꿈쩍도 할 수 없기에 새벽시간을 이용했다.“저쪽  산등성이로 다니던 기억이 새롭지요.보광사에서 기대어 마음을 잡으면서 헤쳐 나갔죠”

고무순씨는 그렇게 해서 자식 셋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큰아들은 동국대에서 박사를 하고 현재 진주에 있는 국립경상대 교수로 재직중이고 딸은 중앙대를 나와 대구서 약국을 하고 있다.  고씨는 “효심이 지극한  막내와 속초서 같이 살고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남편이 급작스럽게 떠나고 나서 살림이 어렵게 되자 큰아들이 유학 계획을 포기했는데 그것도 인연이라고 훗날 대학교에서 자리 잡는데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군요”

요즘은 다리가 아파 절집에 자주 못나온다는 고무순씨는 칠월칠석을 앞두고 오랫만에 보광사에 나와 옛 이야기를 털어놨다. 개산 400주년 보광사에는 고무순씨 같은 실향민 가족들의 기도가 쌓여 있다. “외롭고 의지할 때 없었던 때 보광사에 오는 게 큰 위안이었고 힘이었죠. 남편 49재도 여기서 모셨지요”

함경도 북청이 고향인  실향민 남편과 함께  황무지 같은 땅에서 억척같이 일해서 자식을 공부시키고  일가를 이룬  고무순씨는  시승격 60주년을 맞는 실향민의 도시 속초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신창섭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