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신작 ‘울산바위’는 흥미롭다.익숙한 풍경의 재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울산바위라는 존재를 전혀 다른 조형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울산바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울산바위의 존재가 화면 아래로 어떻게 확장되는가를 그린 것이다.
화면 위에는 거대한 울산바위가 하나의 독립된 존재처럼 우뚝 서 있다. 주변의 풍경은 거의 사라지고, 산 아래의 세계는 길게 늘어진 선들 속으로 흡수된다. 이로써 울산바위는 더 이상 주변 풍경의 한 요소가 아니다. 풍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하나의 단독자, 하나의 존재로 서게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울산바위로부터 아래를 향해 길게 흘러내리는 수직의 선들이다. 김정호는 왜 선을 그었을까.
그 선은 단순한 물감의 흐름이나 조형적 장식이 아니다. 산의 표면에서 시작된 선은 화면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면서 울산바위가 지닌 시간과 지질,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기운이 땅과 우리의 삶으로 흘러내리는 통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선들은 울산바위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울산바위와 세상을 연결하는 맥이다. 산과 마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관계가 선이라는 가장 단순한 조형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생략할수록 울산바위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세부적인 풍경을 지워냈음에도 산은 오히려 더 높고, 더 고고하며, 더 깊고 뿌리 깊은 존재로 다가온다. 이는 형상을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강화하는 역설이다.
따라서 김정호의 선은 단순히 ‘그어진 선’이 아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선이며, 산의 존재가 우리의 삶으로 확장되는 선이다. 화면 위의 울산바위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면, 그 선들은 산을 땅과 인간의 세계에 연결한다.
어쩌면 그 선들은 울산바위를 붙잡아두는 끈이 아니라, 울산바위가 우리에게 내려 보내는 힘의 끈, 존재의 끈인지도 모른다. 구원의 끈 처럼 말이다.그 선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옮겨가면 우리는 어느 순간 산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산의 품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된다.
결국 김정호는 이번 작품에서 울산바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울산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존재의 힘을 그었다.
그가 내려놓은 수많은 선은 산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고, 오래된 바위의 기운을 오늘의 시간으로 끌어내린다.김정호는 선을 통해서 안식과 희망을 향해 내려오는 하나의 끈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울산바위는 더 이상 저 멀리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그 존재의 영적 기운이 선을 따라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는 절대자의 모습이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