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밭에 6번째 물 주는 중”… 금화정리 95세 전유봉 어르신 가뭄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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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금화정리. 섭씨 37도를 넘나드는 폭염 아래, 95세의 전유봉 할아버지가 또다시 경운기를 몰고 밭으로 향한다. 벌써 여섯 번째다. 세 번은 많고, 한 번은 적다는 물주기. 하지만 올해의 가뭄은 유난히 혹독하다.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메마른 땅은 좀처럼 아래까지 젖질 않는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마른 해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3주 전에 들깨를 심었는데, 하나같이 시들시들하니 맘이 아프지.크지도 않고.. 물을 줘도 소용이 없으니…”

어르신은 이미 10여 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셨다. 혼자 밭을 지키는 농사일은 두 배로 힘겹지만, 그래도 “땅을 안 보면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농사를 이어오고 있다. 하루하루가 노동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전유봉 할아버지는 양양 출신으로, 한때 주문진과 속초 일대에서 어업에 종사했다. 명태가 잘 잡히던 시절, 그물 손질과 선창 일을 하며 자식 일곱을 키워냈다. 이후 농업으로 전환하며 금화정에 정착했고, 7남매는 모두 객지에서 제 몫을 하며 잘살고 있다.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농토도 장만하고 기반을 잡았다.

“다 컸으니 됐지 뭐. 나는 이 밭이 좋고, 이 물소리가 좋지.”

농사짓는 마음, 농부의 심정, 이른바 ‘농심’은 들깨 한 포기에도 깊게 스며 있다. 들깨가 시든 모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엔 연민과 속상함이 교차한다.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경운기에 물통을 싣고, 해 뜨기 전부터 해 지는 시간까지 땅을 다독이는 어르신의 손길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100세를 목전에 둔 전유봉 할아버지. 그 부지런함과 생명에 대한 애정은 어떤 뉴스보다 묵직하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시간, 그리고 지금도 땀 흘리는 하루하루에 고개가 숙여진다.

“부디 비가 와서, 들깨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농심도, 사람의 마음도 적셔줄 단비가 간절히 기다려지는 여름이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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