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소년어부의 억울한 옥살이..김춘삼대표,차분하게 진상규명 작업 진행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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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춘삼대표(설악투데이)

“15살에 오징어 조업중 끌려갔다가 돌아와서 숱한 고초를 당하고 감옥살이도 했고 이제 50여년이 지났습니다.”

김춘삼씨(66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피맺힌 세월에 대한 회상에서 고통스런 표정이었다. 그는 최근 출범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시민모임’ 대표로 추대된 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속초 청호동에서 살던 열다섯살 소년 김춘삼은 1971년 8월31일 이까바리(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조업에 나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였다. 9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6남매중 다섯째였다.그날밤 칠흑의 바다에서 정체모를 선박에 끌려 갔고 8시간뒤에 보니 북한이었다.“자정무렵에 짙은 안개로 표박중 북한 해군 함정에 의해 피납되었죠.”

그렇게 강제로 납북되어 북한에 1년 일주일 머물다가 72년 9월7일 귀환했다.귀환 어부들은 바로 속초시청 3층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김춘삼은 “당시 7-10일정도 조사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재심서류 검토중 조사를 받으면서 무려 14일간 강제 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조사를 받으면서도 구타를 당했다.승해호에 함께 승선했던 형들이 많이 맞았다고 한다.16살의 김춘삼은 국가보안법등 혐의로 정식재판에 회부되었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고기잡이 하러 타지로 출타하면 항시 감시가 뒤따랐고 영문도 모르게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행동을 밀고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그러다 1983년 머구리(잠수부)생활을 하던 어느말 악몽같은 일이 터졌다.경찰의 정보원 역할을 하던 같은 배 선원의 고발로 해경에 끌려갔다.고무찬양죄로 둔갑해서 2년형을 선고받고 85년 5월 만기출소했다.”이북에 끌려간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평생 감시와 탄압 그리고 옥살이로 청춘을 다 보냈다고 “고 그는 말한다.

김춘삼의 증언 .“서울 서빙고분실에서 2박3일 조사를 받았다. 그곳 조사실이 여인인숙처럼 양쪽으로 가운데는 복도였는데 조사받을 때 상대에게 겁을 주기위해 문을 열고 조사받았다. 건너편에서 조사받으면서 두들겨 맞고 울부짖는 소리에 질겁을 하게 만든 것이다.”

늘 정보원의 감시와 왜곡속에 살아야 했던 김춘삼씨는 원래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일도 당했다. 이후 속초에서 고려면옥이라는 음식점을 차려 20여년간 운영하다가 요즘은 목수일을 하고 있다. 문학을 좋아하는 감수성 많은 그는 이야기 도중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이빈일리치의 죽음’에 심경을 비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당시 김춘삼과 같이 승선했던 승해호 어부들은 간첩죄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분들이 많고 속초.고성지역에 이같은 납북어부피해자가 수백명에 이르고 고통도 현재 진행형이다.영문도 모르고 납북되었는데 자진납북이라고 조작됐고 고문과 구타에  간첩으로 조작됐다.그 가족의 삶까지 풍비박산이 났다.

김춘삼 대표는 억울함을 입밖에도 못내고 숨죽이며 지내온 피해자분들이 이제는 용기를 내줄 것을 호소했다.그는 “ 이 기사를 보시는 당사자분들은 용기를 잃지 마시고 자신있게 나서서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시민모임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맞춰서 그동안 한많은 인생을 사시다가 돌아가신 그리고 지금도 한많은 인생을 사시는 분들과 그 자녀분들과 함께 심사숙고 하면서 차분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진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말을 맺었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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