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밝히는 오징어배 불빛과 김종학의 ‘동해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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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종학의 '동해어화'

며칠전 앞바다에 불빛이 대낮같이 훤했다.오징어 잡이 배들이 초저녁부터 불을 밝히고 조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차가워진 날씨에 여러 척의 배에서 나오는 불빛이 유난히 따스하게 다가왔다.오징어 잡이가 이제는 겨울철에도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속에 오래전의 기억들이 소환돼 왔다.

어릴적 밤바다는 오징어 배들의 불로 휘황찬란했다.수평선따라 이어지는 집어등 불빛띠가 정말로 장관이었고 그거 구경하는 재미로 밤시간을 떼우기도 했다.고기도 많이 잡히던 시절이라 그렇게 불밝히고 밤새 조업하고 아침 항구로 들어서면 만선의 배에서 콧노래가 절로 들려왔다.

앞바다에서도 잡았지만 대화퇴 먼바다에서 가서 몇날씩 조업하고 왔는데 그걸 ‘남발이 간다’고 불렀다. 어느 해인가 기상이 안좋아 오징어 잡이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서 마을 분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 울음바다가 된 적도 있었다.오징어 참 흔했다.잡아온 오징어를 손질한다고 처마밑에 가마니깔고 앉아 수북히쌓아 놓은 오징어를 한 마리를 다듬는데 발 뒤꿈치로도 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오징어는 특유의 향미로 만인의 입맛을 돋우었던 지역의 명물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오징어 잡이가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실제 오징어 값도 금값이어서 먹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귀한 몸이 되었다.특히 요즘은 기름값도 상승해 한번 출어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오징어 잡이 출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머릿속에 채우고 있던 차에 저녁 5시 무렵 버스를 타고 속초로 나가는 차창 봉포 대섬 부근에 보이는 오징어 잡이 불빛은 마음을 데우면서 반갑지 않을 수 없다.그리고 그 모습은 자연스럽게 김족학의 그림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설악산 화가로 명성 높은 김종학은 설악산과 꽃도 많이 그렸지만 지역의 수경(水景)을 그렸다.지역 수경에서 바다를 빼 놓을수 없는데 그의 ‘동해어화’는 오징어 잡이 배를 그린 그림이다.‘동해어화’에서 ‘漁火’는 고깃배 불인데 그게 수평선에 떠있는 오징어 배들이 켜 놓은 불이다. 마치 비구상처럼 그린 동해어화는 바다와 하늘의 비율도 기가막힐 정도의 비율로 나눠 놓고 있어 추억을 새기기에 충분하다. 어화라는 표현이 중국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에서 이 구절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에서 왔다고 김형국 교수가 설명해 놓았다.

오징어 배 불을 어화로 이름 붙인 김종학의 그림제목도 운치 있고 멋스럽지만 ‘동해어화’는 지역특산물 오징어를 화폭에 담은 상징적 그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유독 바다에서 옛적이 그리워지는 게 바다에서 고기가 이전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부재의 탓이 크다고 할수 있다. 가난하지만 넉넉했던 시절이라는 모순적 표현이 가능했던 시절은 단지 향수만이 아니라 작금의 바다흉년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다.

겨울날 오징어 배 불빛이 데려다 준 시간추억과 김종학의 그림이 위안이었던 영하 20도를 오르 내린다는 그밤 오징어를 얼마나 잡았을까 궁금하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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