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절집 보광사 400년 …실향민 지장보살과 실향민의 도시 속초와 기막힌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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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광사 목조 지장보살상

안양암,지도상에서 사라진 잊혀진 이름이다. 안양암이 고성군 화암사 근처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를 알길이 없다, 수소문할 지푸라기 근거도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안양암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시간을 400년 거슬러 올라가 1623년 창건되었다는 금강산 신선봉 아래 어디쯤인 안양암은 홍수에 다 유실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유물이 다행스럽게도 1937년 지금 영랑호반의 보광사로 이전해 왔다. 그 당시는 보광사가 아닌 포교당이었고 이후 보광사로 명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안양암을 보광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근거다.지금 보광사에 안양암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단아하게 앉아 있는 지장보살의 부드러운 모습은 바다같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 보기 드문 만남이다.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속초와 인연의 갈피다. 안양암 지장보살은 자기 터전에서 떠났으니 실향민이나 마찬가지다.그렇게 실향민으로 먼저 속초 영랑호에 자리를 잡았는데  속초도 실향민의 도시가 되었다.예언의 실현이라도 하듯이 말이다.지장보살이 자리를 잡고 얼마후 6.25 전쟁이 발발했고 속초는 피난민들이 몰려 들었다. 북에서 내려온 많은 피난민들이 고통과 눈물속에 견뎌야 했고 그 와중에 보광사는 그들을 품었고 오늘도 실향민들과 함께하고 있다.이게 불가의 인연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광사 목조 지장보살상은 한씨(韓氏)라는 여인이 죽은 남편 숭록대부 나업(羅業)이 “극락에 가서 환생하여 함께 아미타부처님을 뵈옵기를 빌”고자 조각승인 초안(草安)이라는 승려에게 만들게 한 작품이다.효종 5년(1654) 8월29일 금강산 안양암이라는 암자에 안치한 것으로 전해진다.나업은 환관으로 나오는데 죽은 내시를 위한 불상 조성 사례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수복후 보광사는 많은 속초시민들의 기도처였다. 염원을 드리기 위해서도 오지만 갈곳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절집 근처는 시민들에게 푸근한 휴식공간이었다. 절집이라는 것도 잊은 채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면서 고단한 삶을 달랬다. 보광사는 그렇게 열린 절집으로서 시민들과 함께 하면서 2023년 400주년을 맞는다.

실향민의 도시 속초와 역시 실향민인 지장보살상의 운명적인 인연 하나만 놓고 봐도 보광사 400년은 그 의미가 심대하다고 할 수 있다. 보광사는 2023년 4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큰 기조는 속초역사와 함께 해온 절집으로서 시민들과 함께 400년을 돌아보고 미래 400년을 그려 보자는 것이다.

특히 실향민들을 위해 보광사 관음바위에서 ‘400개의 촛불 새해’ 행사도 준비하고 있고 지장보살상을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불교박물관도 개관한다.

역사가 일천한 속초에서 보광사는 단순한 불교절집을 넘어 하나의 인스티튜션(Institution)이다. 삶의 애환을 녹여내고 고락을 같이해 온 동행의 손길이다.보광사를 빼고 속초를 이야기 할수 없다.어려운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보광사는 중심을 잃지 않고 시민들 곁에 함께 했다.마음의 이웃이고 정신의 고향이었다.80여년된 터전이지만 보광사에 들어서면 천년고찰의 기운과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편안해진다. 실향민의 고향 속초에서 실향민의 내력을 간직한 보광사 400년을 맞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그래서 남다르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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