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경작 넘어 전환 거점으로…파리 아그로시테에서 보는 텃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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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성원 페북

파리의 북서부 외곽에 8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도시 콜롱브(Colombes)에 조성된 도시 전환의 기지이자 복합 문화 도시 농장인 아그로시테(AgroCité)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던 도시 텃밭 그 이상의 텃밭이다. 생태 전환을 위한 시민 복원성 운동인 ‘R-Urban’ 프로젝트의 일부다.

2008년부터 시작된 R-Urban은 지역 생산과 지역 순환 유통, 자원 재생, 생태 주택 자가 건축과 협동 주택, 도시 농업 등 지역의 생태적 순환 경제를 구축하려는 프로젝트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변화에 대응해서 도시 환경과 지역의 일상생활을 바꾸는 협력적 시민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그로시테 안에도 여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애니마랩(AnimaLab)은 벌통과 닭장과 관련한 현장 실험실이자 가축 사육장이다. 이 농장에서 생산된 달걀과 꿀은 농산물 매장을 통해 지역에서 유통된다. 리사이랩(RecyLab)은 도시 폐기물을 자가 생태 건축용 자재로 재생하는 장비를 보관하는 생태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자원 순환과 재생, 자가 건축 워크숍이 진행된다. 에코햅(Ecohab)은 부분적으로 자가 건축한 실험적인 커뮤니티 공간이자 생태 주택 단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R-Urban은 도시를 보완하고, 도시의 생태적 회복력을 복원하는 데 협력하는 실천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사업들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고무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콜롱브에서 추진하는 R-Urban 사업 중 아그로시테야말로 시설과 공간, 다양한 활동이 집적되는 중심 허브라 할 수 있다.

R-Urban을 추진하는 곳은 콜롱브만이 아니다. R-Urban은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 5개 도시에서 6곳의 허브를 개발했고, 60여 공공 및 시민 단체와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직접 관할하고 있다. 게다가 도시 내 자급적인 생산-유통-소비를 엮는 지역 순환 경제 내에서 새로운 친환경 일자리들을 만들어 냈다.

R-Urban에 대해 주목할 또 다른 점은 다양한 시민과 단체가 참여하는 협력 네트워크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도시텃밭을 단체나 기관,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운영 주체가 시민들에게 임대·분양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아그로시테는 운영 주체가 중층적이다. 아주 많은 단체들이 함께 운영한다. 농장을 조성하기 위한 부지를 마련하는 데에는 금융 협동조합인 Nef와 Nef Gestion이 참여했다. 정부와의 협력을 위해 EU Life Programme 환경 문제 및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을 지원하는 EU의 자금 조달 기구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자가 건축 워크숍을 진행하는 AAAAtelier d’architecture autogérée가 참여하고 있다.

콜롱브 시, 공공 시민 워크숍을 지원하는 퍼블릭 워크스 런던Public Works, London을 비롯해 벨기에, 스페인, 로마, 독일 등 유럽 각국의 기관들이 협력하고 있다. 아그로시테에는 도시 농부뿐 아니라 문화 기획자, 예술가, 적정기술 엔지니어, 제작자,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협력하며 실험하고 있다. 대략 40여 단체가 관여한다. R-Urban 헌장에 서명하면 회원이 되는 동시에 아그로시테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 공간들의 운영 주체가 된다.

아그로시테의 풍경을 돌아보자. 이곳엔 텃밭과 비닐 온실이 있다. 퇴비장이 있고, 닭장, 벌통이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도시 텃밭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쪽 구석엔 재활용 자재를 쌓아 놓은 적재소가 있다. 버려진 재활용 자재로 지은 커다란 목조 건물 내부에는 공유 카페와 공유 식당 겸 주방이 있다. 이곳 농장에 온 사람들은 종종 다과와 식사를 함께한다.

이뿐 아니다. 작은 복합 문화 공간이 있어 공연과 다채로운 문화 행사, 교육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종종 이곳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도 판매한다. 한쪽엔 생태 화장실이 있는데 그 하부로 떨어진 분변은 발효시킨 후 퇴비로 사용한다. 건물 지붕엔 태양광이 있어 전기를 생산하고, 녹색지붕은 빗물 저장 탱크와 수경 재배 시설과 연결되어 있다. 피자를 구울 수 있는 화덕이 있을 뿐 아니라 간단한 농기계와 공구를 보관하는 보관함도 있다. 이 외에도 이곳에선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들이 벌어지고 그 결과로 크고 작은 장치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아그로시테는 단지 경작만을 위한 도시 텃밭이 아니고, 기후 변화에 대비해 도시를 생태적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민 활동, 연구, 실험, 교류가 벌어지는 곳이자, 지역 경제를 자급적 순환 경제로 전환하고, 에너지를 생산하고 자원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한다.

바로 아그로시테 같은 곳이 내가 이 도시 언저리에 와서 다시 꿈꾸는 도시 텃밭의 풍경이다. 다행히 한국의 도시 텃밭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단지 경작 중심이던 곳을 교육과 문화, 사회 교류, 아이들의 모험 놀이터, 적정기술의 실험장, 공유 주방이 있는 곳으로 바꾸거나 기능을 분화시켜 나가려는 흐름이 아직 미미하지만 시작되었다.

이런 변화가 단지 도시 텃밭만의 변화가 아니라 생태 건축, 도시 자원 순환과 재생, 지역 순환 경제, 놀이터 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접속하기를 고대한다. 보다 많은 단체와 기관, 활동가들이 겹겹이 관여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현장이길 또한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도시의 생태적, 시민적 회복력을 복원하는 도시 전환의 거점이자 공유지이길 바란다. 조금씩 도시 내에서 영역을 넓혀 가며 일상을 바꾸는 도시의 효모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희망조차 없으면 독한 미세 먼지 속에서 봄이 아닌 봄을 견뎌야 하는 이 도시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글:김성원(살래공동텃밭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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