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방 손님도 줄었지요”, 김순용의 구두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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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악투데이

속초 수복탑에서 시청 방향 우측 길을 따라 가다보면 길가에 작은 다락방같은 허름한 건물이 나온다.‘구두방’이라는 간판이 걸린 곳은 말 그대로 구두 수선점이다.

한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김순용씨가 구두 손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이곳에서 구두를 고친지도 15년이 되어 간다.올해 71살이지만 현역이다.“ 손님 꽤 줄었지요.코로나가 구두방도 영향을 주네요. 그래도 이렇게 일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김씨가 감사하다는 대목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그는 원래 목수였다. 지역에서 공사현장도 다니면서 갖은 일들을 했다.크고 작은 사고도 잦았지만 그런데로 견디다가 척추를 다쳐 큰수술을 받았다.그 후유증으로 장애등급을 받고 목수일을 놨다.

막막한 가운데 그가 새롭게 도전한 분야가 구두수선이다.“ 한달 반 정도 배웠지요.허리가 온전치 않지만 먹고 살려니 해야 했죠. 목수일 해서 손재주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두고치는 거 간단치 않고 첨에 배우느라 애 먹었어요.”

이렇게 재교육을 통해서 구두일을 시작했지만 업소를 마련하지 못하던 차에 고인이 된 동문성 속초시장 재직시 현재 이곳 임시건물을 배려 받았다.

“장애인 배려로서 전기세만 내고 일을 하니 참 다행이죠.어디가서 일해요 요새, 더구나 이 일이 좀 그렇게 보여도 누구 간섭 받지 않고 맘 편하니 참 좋지요.”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 요새는 하루 10명 오기도 바쁘다고 한다.틈새 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보는 게 전부다.

부인은 간성에서 일을 하고 있다.아들 2명은 독립해서 객지서 자기들 밥벌이 한다고 한다.아들들이 용돈을 준다고 성화지만 아직은  안받고 산다고 한다.김순용씨는 속초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좁은 지역이지만 저희가 주말부부예요. 휴일에나 얼굴 보니 말이죠.”

그는 원래 서울 출신이다. 40여년전 인생 풍파속에 어찌하다 보니 고성군 간성에 까지 내려와서 터전을 잡고 살았다. 그래서 집이 간성에 있다.
“목수할 때도 참 힘들었어요.푼값도 떼이고, 그때는 십장들이 돈받아 놓고도 주지 않고 했지요. 어디다 하소연 할 때도 없고 그냥 수모를 당하던 시절이었지요.요즘은 임금도 오르니 많이 좋아졌다니 세월 좋아진거죠.”

김씨의 회고에 공감하는 바 목수였던 아버지도 유사한 경험을 많이 했다. 중학교 다니던 내가 학교 월사금 낼 때면 푼값을 받으러 다닐 정도 였으니 말이다.

김순용씨가 구두 한컬레 뒷굽을 갈아 주고 받는 수고비가 5천원,가성비로 치면 참 좋은 서비스구두방이다.“구두 고치러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단골인데 그분들이 없어서 고치러 오는게 아니라 절약 습관이 배서 낡은 구두 고쳐 신고 하는 것 같아요.본받을 점도 많고 저도 좋지요.”

물건이 흔한 시대다. 그렇지만 절약은 여전히 미덕이고 그런 태도가 구두방에 발길을 옮기게 한다.오래돼서 편안한 신발은 버리기가 참 애매하다. 고쳐 신으면서 늘 새것처럼 신는 것도 요령 아닐까.

코로나로 유례없는 단절의 시대,세모라지만 거리는 쓸쓸하기 짝이 없다.김순용의 오두막같은구두방 지붕도 그래서 더 낮아 보이는 걸까.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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