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단학 아줌마’ 오미경의 오뚜기 인생…“진심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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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 아니라 진심을 파는 거죠. 그 덕에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됐죠. 감사한 일입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녀같이 단아한 오미경씨, 쥬단학 속초지사 카운슬러로 17년째 일하고 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브랜드지만 요즘은 예전 같지 않은 쥬단학에서만 한우물을 파며 판매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 되고 경쟁이 치열한 화장품 업계에서 쥬단학 상표로 연간 수억원의 매상을 올리며 인정받고 있다.“올해는 3관왕이 목표죠. 판매액 1위는 물론이고.단일 품목 최고 성적…”

속초에서 안정적인 고객을 바탕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오씨의 인생은 드라마같이 전개되었다.전주가 고향인 오미경씨가 속초에 발을 디딘 것은 남편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서 였다. “인천에서 남편을 만나 3개월 꿀맛 같은 생활을 하고 내려 왔는데 그게 전부였지요. 속초에 오면서부터 시아버지 병수발이 시작되었고 그게 20년 지속되었으니 말이죠.거기다가 시어머니의 등쌀까지…” 그런 환경속에 남편의 사업도 기울기 시작했다. 모든 게 풍비박산이 났고 정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2006년 오씨는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닥치는 데로 일을 했다.화장품 판매 말고도 식당과 콘도 청소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덤볐다.악착같이 벌었다. 너무도 힘든 날은 영금정 바다 앞에 차를 세우고 한없이 울었다. “ 친정 엄마한테 이야기도 못 건네고 안으로 삭히면서 이겨내야 했지요.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었으니요.”

특유의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도 늘면서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도움이 컸습니다. 정말 잠 잘곳도 없는 처지였는데 장사동에 방을 내주면서 살길을 찾는 고마운 인연도 만나고..” 그 무렵 오씨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시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여젼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가사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남편은 펄쩍 뛰었고 타협책으로 남편이 객지 나가서 사업 하는 걸로 봉합했다.오씨 남편은 그후 인천서 전기사업을 영위중이다.

“아이들 없었으면 정말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겁니다. 그 와중에서도 애들을 대학에 보냈고 이제는 다들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손주가 태어난 날입니다.”

화장품 판매 특성상 별의별 손님을 다 만나고 별일을 다 겪지만 오씨는 그 때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썼고 그게 손님들에게 신뢰로 전해졌다.오로지 일에만 승부를 걸었고 지금도 오씨의 직업철칙이다.

이제 긴 세월 응얼이진 굴곡들도 펴졌고 집도 장만했다. 그럼에도 오미경씨는 여전히 20여년전 자세로 일하고 있다.“여전히 청소일도 하고 일하는 건 똑같죠. 단 이제 청소일을 해도 돈을 안 받습니다. 대신 화장품 구매를 권유하죠.” 판매왕 다운 마케팅이다. 세월의 칼날속에 묻은 상처를 잘 보듬으면서 늘 감사로 사는 오미경씨 이렇게 말했다.“하나 겪으며 다른 고난이 닥치고 인생살이가 참으로 험난하다는 걸 몸으로 깨우쳤습니다.어떻게  속초에서 그 세월 다 겪었는지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속초 남자라면 이가 갈렸는데  지나고 보니 다 고마운 일입니다.고객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 준 것이죠.”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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