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오색 터줏대감 홍창해의 신년 구상…”오색케이블카 시대로 산악관광 꽃 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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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오색은 동화같다.날씨 탓인지 찾아 오는 손님도 별로인  만물상 슈퍼의 홍창해는 우두커니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요즘 아내가 서울 딸 집에 가 있어 꼼짝 못하고 가게를 보는 중이다.천성이 부지런해서 망중한속에서 그의 뇌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오색케이블카.

“케이블카 착공이 곧 될텐데 마을은 사실 구체적인 준비가 아직 없다.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요”라며 운을 뗀다.오색터줏대감이라는 별칭이 딱 들어맞는 홍창해에게 오색케이블카는 일생의 목표였다. 케이블카 논란 40년 세월이 가는 동안 그의 인생도 많이 흘렀다.그는 강조한다. “케이블카를 통해서 오색을 산악관광의 메카로 다시 만들고 싶다. 그래야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50년만의 부활을 기대하면 가슴 벅차다. 내 삶도 그렇고 마을에서 기대도 그렇다”

홍창해에게 오색은 운명이었다.대구 출신 아버지를 따라 3살 때 이곳에 정착해 이날까지 붙박이로 살고 있다.그냥 방관자로 산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기록자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 늘 오색발전과 미래를 궁리하고 실천하려 애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같은 목표 실현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했다.이장도 했고 활동가로 문화해설사로 사진가로 시를 쓰면서..그의 다재다능함이 만지는 일마다 발휘되었다. 재주많은 사람이다.그런 와중에 출중한 사진 실력으로 오색 사진전도 개최했다.

그가 사진기를 만지게 된 계기는 앞서가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오색에 정착한 아버지는 어느 날 서울의 신문사에서 오색구경을 온 사람들의 사진기에 필이 꽂혔다. 사진기를 구하면 밀려 드는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그 사진사를 설득해서 비싼가격에 구입해 사진촬영사 업을 시작했다. 남다른 상인감각을 보여주는 모습이다.당시 오색의 만물상 슈퍼는 마치 로마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거기에 가면 모든 게 있었다. 홍창해의 아버지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당시로는 드물게 엽총 사냥을 다녔고 실제 속초서 총포상을 운영했다.많은 돈을 벌었다.오색과 양양 다니는 버스도 운영했다.오색에서 뭔 일을 하려면 아버지를 통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아들 사랑도 지극했다.학교 공부를 잘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니는 게 불편할까봐 오색초등학교 앞에 집을 얻어 주었다. 중고교를 속초서 마칠때도 아버지는 학교에 자주 들렀다. 홍창해는 “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그때는 사춘기라서 그랬는가 같다”고 회고한다.

홍창해는 아버지가 작고한 뒤 그 카메라를 메고 다니고 있다.그리고 더 넒은 반경의 오색사진을 찍고 마을 일을 거들고 있다. 그의 오색사랑은 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해 수해가 나서 다리가 붕괴돼 철거를 하려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야밤에 가서 다리 준공 표지판을 떼어 가지고 와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오색의 상징 약수터를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도 눈물 겹다.그런 오색 물건이 창고에 가득하다. 아버지 아이디어로 만든 반달곰 편지꽂이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토산품이다.당시에는 이런게 유행이었고 관광객의 눈길을 잡았다.그는 언제가 이들 수집품을 전시할 전시관을 꿈꾸고 있다.”오색 과거와 현재가 볼거리로 제시되면 근사하지 않을까요”

다시 오색케이블카 시대로 화제가 돌아왔다. 그는 이런 구상을 갖고 있다.“지금 만물상 가게 주변의 모습을 살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복합 건물을 지어 거기에 다양한 가게 숙박 카페뿐 아니라 공공시설도 함께 넣으면 마을도 좋고 관광객들에게도 좋을 듯하다”.그 건물안에 전시관이나 마을 박물관 하나 갖추면 좋겠다는 희망이다. 공감가는 대목이다.쇠락한 현재의 오색 모습으로 케이블카 손님을 맞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도 안되기에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밖에는 눈이 소복히 쌓였다. 홍창해는 얼마전 속초서 하숙하던 집 딸 전화번호를 얻어 부산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학교 졸업 후 처음이라고.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 운영중인 만물상 슈퍼도 40년이 넘었다.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가게 모습이 짠하다. 그래서인지 그도 과거 회고가 많아 지고 친구들 안부도 궁금해진다고 한다. 워낙 부지런한 그가 긴 겨울을 오색에 갇혀 있으니 머리만 분주할 것 같은 거 당연한거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게 된다고 홍창해에게  오색마을은 부모같고 자식같다. 처음이자 끝이다. 오색케이블카 시대로 산악관광 시대를 활짝 여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그의 눈은 반짝였다.늘 열린 사고의 오색사나이 홍창해가 있어 그렇게 될 듯하다.

글:김형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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