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성전통시장’이라 써야 하는 이유..일제가 3.1만세 시위로 간성시장 폐쇄 아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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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 간성군은 애국의 땅이다. 지금의 고성군(高城郡)은 3․1만세운동 당시 간성군(杆城郡)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침탈에서 비롯된 일제강점기에 강원도 동해안에서 이에 항거하여 가장 먼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 당시 간성군이다. 일본 조선총독부는 간성시장에서 계획되었던 만세시위가 누설되자 긴급히 간성군의 모든 오일장을 폐쇄조치하고 조선총독부령으로 1919년 5월 15일 간성군을 고성군에 강제 편입시켰다.출처 ‘2017년 강원도사 제20권 375면 17.

이에 따르면  “간성군(현 고성군)은 강원도의 동해안지역에서 3·1독립운동 만세시위가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었다. 1919년 3월 14일 선언서가 비밀리에 배포되었는데, 간성군 신북면 계월리에 사는 청년 김동원(金東元, 당시 22세)이 1통을 입수하였다”로 시작하여 “간성에 귀향한 개성 한영서원(韓英書院) 학생 이동진은 청년 함기석과 함께 독립운동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키니 문명교육을 받은 자는 누구라도 독립을 위하여 만세를 부르자』라는 내용의 선언문을 간성보통학교 4학년 교실 입구에 붙여 학생들의 각성과 만세시위를 촉구하였다.

선전문을 읽은 간성보통학교 학생 <중략>이내구 등은 3월 17일 전교생 150명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마침 간성읍의 장날(2·7일)이라 교정에서 만세를 부르던 학생들은 장터로 나서 시위하던 군중들과 합세하려고 교문을 나섰으나 일본 관헌에게 제지당하였다. 시위의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간성 헌병분견대에서 1주일간 구류(拘留)되었으나 체포된 학생들의 교장인 일본인 쿠로에[黑江透]의 교섭으로 석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진 내용에서 “간성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 이후 3월 27일 간성·거진·현내면 등에서 파견한 대표와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하였고, <중략> 이에 일제는 즉시 간성군 내의 시장을 일제히 폐쇄하였다. 거진 부근의 오대면 봉평리 시장은 4월 13일, 토성면 교암리 시장은 16일, 간성읍 시장은 17일까지 폐쇄 조치하고 삼엄한 경계가 취해져 군중의 집결을 방지하고자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3.1만세시위 배경에 간성 오일장이 있었다. 강원지역에서 있었던 3.1만세시위의 특징이었다.

간성 오일장이 만세시위의 배경이 된 것에 대해 강원대 엄찬호 교수는 ‘강원지역 3.1운동의 특성에 대한 재조명’논문에서 “강원지역의 시위 전개는 처음에는 대개 오일장을 이용하여 장꾼 등에게 태극기·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고, 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시장을 누비고 군청·면사무소·경찰관주재소·헌병파견소·학교 등에 몰려가 시위하였다. 장날에 시위한 것은 인원 집결을 장꾼으로 가장시켜 적발을 막고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고려대 서연호 명예교수는 고성문화6호(2015년) ‘고향주민들이 잘 사는 길’에서 “1919년 3.1운동 때 간성시장에서 독립시위가 계획되었지만 사전에 누설되어 시장이 폐쇄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총독부는 5월 15일, 군내 죽왕면과 토성면을 양양군에 편입시켰고, 간성군은 고성군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35년에 오대면은 거진면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고성군은 민족분단의 상징인 비극의 땅이 되었다”고 했다.

이상과 같이 간성군의 군청을 고성면으로 이전하고 고성군으로 개칭된 사유는 간성시장 3.1만세시위 때문이다. 시위통제를 위해 일본군 보병 제20사단 제74연대가 주둔하고 있던 고성군으로 간성군을 강제 편입시켰던 것이다. 고려대 연구교수 이송순의 논문 ‘농촌지역 3.1운동 확산과 공간적 형태별 특성’에서 “장터시위는 주변으로의 운동 확산에 유리했고, 대규모 시위인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에서 간성시장을 폐쇄통제하고 간성군을 강제 편입시킨 일제의 결정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일제의 억압에 맞섰던 3.1만세운동 역사의 현장 간성전통시장이 2016년 다시 한 번 존폐의 위기를 맞이했었다. 골목시장 육성사업이라는 미명아래 하루아침에 ‘맑은 물 밝은 빛 천년고성시장’으로 개명됐었다. 다행히 지금은 본래대로 ‘간성전통시장’으로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시장골목 여기저기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읍내 대로를 오가며 보이는 간성을 뜻하는 ‘ㄱ’자 모양의 ‘간성전통시장’ 간판이 새롭다.

글:최철재(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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